제2장 타락론 70

인간은 누구나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의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어떠한 악의 세력에 몰리어, 본심이 원하는 선을 버리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악의 세력 가운데서 인류의 죄악사는 연면히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이 악의 세력의 주체를 사탄이라고 한다. 인간이 이 사탄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사탄이 무엇이며 또 그것이 어떻게 해서 사탄이 되었는가하는,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악을 발본색원함으로써 인류 죄악사를 청산하고 선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는 먼저 사탄이 사탄된 동기와 경로와 그 결과를 밝히 알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이러한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타락론을 알아야 한다.

이제까지 인간 속에 깊이 그 뿌리를 박고 쉬임없이 인간을 죄악의 길로 몰아내고 있는 죄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기독교 신도들만이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의 뿌리가 된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나무의 과실이라고 믿는 신도들과, 또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이것도 그 어떠한 것에 대한 상징이나 비유일 것이라고 믿는 신도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제각기 구구한 해석을 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완전한 해명이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 신도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담과 해와가 따먹고 타락되었다는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어떠한 나무의 열매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부모 되시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자녀들이 따먹고 타락할 수 있는 과실을 그렇게도 보기 좋고 탐스럽게 만들어서(창세기 3장 6절 그들이 손쉽게 따먹을 수 있는 곳에 두셨을 것인가 ?

예수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5장 11절)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먹는 것이 어떻게 인간을 타락케 할 수 있었을 것인가 ? 한편 인간의 원죄는 인간의 시조로부터 유전되어 나오고 있는 것인데, 먹는 물건이 어떻게 원죄를 유전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유전은 오직 혈통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그 무엇을 먹었다고 하여 그 결과가 후손에게까지 유전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선악과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고 믿고 있는 신도들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인간에게 사망이 따르는 방법으로써 그렇게 무자비한 시험을 하셨으리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담과 해와는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코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먹으면 죽을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을 따먹었다. 기아에 허덕였을 리도 없는 아담과 해와가 먹을 것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렇게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어떠한 물질이 아니고 생명에 대한 애착까지도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자극을 주는 다른 무엇이었음에 틀림없다. 즉 선악과가 이와 같이 물질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른 무엇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성경의 많은 주요한 부분이 상징이나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데, 무엇 때문에 선악과만은 굳이 문자대로 믿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은 모름지기 성서의 문자에만 붙들려 있었던 지난날의 고루하고도 관습적인 신앙태도를 버려야 하겠다.

선악과를 비유로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해명하는 방법으로서 창세기 2장 9절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에덴동산에 있었다고 하는 '생명나무'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이 '생명나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그와 함께 있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이라는 것도 바로 알 수 있겠기 때문이다.

성서의 말씀에 의하면, 타락인간의 소망은 '생명나무'앞으로 나아가 '생명나무'를 이루는 데 있다.잠언 13장 12절을 보면, 구약시대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도 '생명나무'를 소망의 대상으로 바라고 있었던 것이고,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기록을 보면,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의 소망도 역시 '생명나무'에 나아가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타락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이 '생명나무'인 것을 보면 타락 전 아담의 소망도 '생명나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 하면 복귀과정에 있는 타락 인간은 원래 타락전 아담이 이루려다가 못 이룬 바로 그 소망을 다시 찾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24절에 아담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화염검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막아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로 보아도 타락 전 아담의 소망이 '생명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의 소망이었던 이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기 때문에(창세기 3장 24절), 그 '생명나무'는 그 후 한결같이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져 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면 완성될 때를 바라보며 성장하고 있던 미완성한 아담에 있어서의 소망이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것은 그가 타락되지 않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생명나무'의 내용을 바로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은 곧 완성한 아담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생명나무'는 결국 완성한 아담을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타락되지 않고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 되어서 '생명나무'를 이루었다면, 그의 후손들도 모두 '생명나무'가 되어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그의 길을 화염검으로 막아버리고 말았다(창세기 3장 24절). 그렇기 때문에 '생명나무'는 창조이상을 복귀하려는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죄가 있는 타락인간은 그 자신의 능력으로는 창조이상을 완성한 '생명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인간이 '생명나무'가 되기 위하여는 로마서 11장 17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창조이상을 완성한 한 남성이 이 지상에 '생명나무'로 오셔 가지고 모든 인간을 그에게 접붙이어 하나되게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생명나무'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3장 12절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고대하였던 '생명나무'는 바로 초림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3장 24절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화염검으로써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아담의 길을 막았기 때문에, 이것이 걷히지 않고는 인간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도행전 2장 3절에 기록된 대로 오순절 날에 성도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불같은 혀 곧 화염검이 갈라진 후에야 성령이 강림하여, 전 인류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그에게 접붙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도들은 '생명나무'되시는 예수님에게 영적으로만 접붙임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또다시 속죄를 받아야 할 죄악의 자식을 낳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아담으로부터 유전되어 나온 원죄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또 그 자식에게 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전편 제4장 제1절).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상에 '생명나무'로 재림하셔서, 온 인류를 다시 접붙이심으로써, 원죄까지 속죄해 주시는 섭리를 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말씀대로, 신약성도들이 또다시 '생명나무'를 고대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는 '생명나무'는 바로 재림 예수 님을 비유한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를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생명나무'로서 복귀하시려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담이 타락하여 창세기 2장 9절의 첫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타락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님은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의 후'생명나무'로 재림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 님을 후아담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린도전서 15장 45절).

하나님은 아담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배필로서 해와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동산 가운데에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을 비유하는 나무가 있었다면 그러한 여성을 비유하는 또 하나의 나무도 있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생명나무'와 같이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창세기 2장 9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한 그 나무는 창조이상을 완성할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완성한 해와를 비유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예수님을 포도나무(요한복음 15장 5절) 혹은 감람나무(로마서 11장 17절)로 비유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인간타락의 비밀을 암시하심에 있어서도 완성한 아담과 해와를 두 나무로 비유하셨던 것이다.

해와를 꼬여서 범죄케 한 것은 뱀이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3장 4-5절). 그러면 또 이 뱀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우리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 그 내용에 의하여 뱀의 정체를 알아보기로 하자.

성경에 기록된 뱀은 인간과 담화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적인 인간을 타락시킨 것을 보면 그것도 영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뱀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더욱 영물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또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보면, 하늘에서 큰 용이 땅으로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옛 뱀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해와를 꼬인 그 뱀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뱀이 하늘로부터 내쫓겼다고 하였으니, 하늘에 있었던 그 옛 뱀이 영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편 이 뱀을 마귀요 사탄이라고 하였는데, 이 사탄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인간의 마음을 악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온 것이 사실이니 그것은 영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사탄이 영물인 것이 사실이라면, 사탄으로 표시된 뱀이 영물임을 말할 것도 없다. 성서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사실로 보아, 해와를 꼬인 뱀은 동물이 아니고 어떠한 영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뱀으로 비유한 영물이 과연 창세 전부터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피조물 중의 하나였던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 뱀이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대립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존재라면, 피조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 악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으로서 영속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버리고 말 것이며, 모든 존재가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일원론은 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뱀으로 비유한 이 영물은, 원래 선을 목적으로 창조되었던 어떠한 존재가 타락되어 사탄이 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과 담화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또 그 소재가 하늘이었고, 한편 또 그것이 만일 타락되어 악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심령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존재는 과연 무엇일 것인가? 천사 이외에는 이러한 조건을 구비한 존재가 없으므로 우선 그 뱀은 천사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어두운 지옥에 던져두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을 꼬여 가지고 범죄 하였던 뱀을 곧 천사라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뱀은 혀끝이 둘로 갈라져 있다. 따라서 그것은 한 혀로 두 말을 하고, 한 마음으로 이중의 생활을 하는 자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또 뱀은 자기의 먹을 것을 몸으로 꼬아서 먹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유혹하는 자의 표상이 된다. 그러므로 성서는 인간을 꼬인 천사를 뱀으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인간을 꼬여 타락케 한 뱀이 바로 천사였으며, 이 천사가 범죄 하여 타락됨으로써 사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 다음으로 우리는 천사와 인간이 어떠한 죄를 저질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유다서 1장 6절에서 7절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잇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천사가 간음으로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간음이란 혼자서는 행할 수 없는 범행이다. 따라서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행하여진 천사의 간음에 있어 그 대상이 되었던 존재가 무엇이었던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인간은 어떠한 죄를 저질렀던가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창세기 2장 25절을 보면, 범죄하기 전 아담 해와는 몸을 가리지 않은 채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한 후에는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무화과나무 잎으로 하체를 가리었다(창세기 3장 7절). 만일 선악과라고 하는 어떠한 과실이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따먹고 범죄를 하였다면, 그들은 필시 손이나 입을 가리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허물을 가리는 것이 그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손이나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리었었다. 따라서 이 사실은, 그들의 하체가 허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들이 하체로 범죄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욥기 31장 33절에는 내가 언제 아담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담은 타락한 후 그의 하체를 가리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아담이 가리었던 그의 하체가 허물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담의 하체가 어찌하여 허물이 되었을 것인가 ?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이 하체로써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타락되기 전의 세계에 있어,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저지를 수도 있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식하라(창세기 1장 28절)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사랑으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두고 볼 때 사랑은 가장 귀하고 가장 거룩한 것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역사적으로 사랑의 행동을 천시하여 온 것은 그것이 바로 타락의 원인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도 또한 음란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밝힌 바 인간이 천사의 꼬임에 빠져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인간이나 천사는 모두 행음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그 위에는 피조세계에 있어서 영적인 존재로서 서로 어떠한 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는 인간과 천사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등을 결부하여 볼 때, 인간과 천사와의 사이에 행음관계가 성립되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는 '마귀'는 곧 사탄이요 사탄은 곧 인간을 꼬인 옛 뱀이라고 명시하였다. 이러한 성구들로 미루어 보면, 인간은 '마귀'의 후손이요 따라서 사탄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국 뱀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경위로 타락한 천사 즉 사탄의 후손이 되었는가 ? 이것은 인간의 조상이 천사와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사탄의 혈통에서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이 아니고 사탄의 혈통으로써 태어났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친자식이 못되고)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 마태복음 3장 7절에는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 즉 사탄의 자식이라고 질책하였고, 마태복음 23장 33절에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보시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책망하신 기록이 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천사와 인간 사이에 행음관계가 있어서 그것이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해와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또 선악과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그것은 해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목이 과실에 의하여 번식되는 것과 같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자녀를 번식해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악의 자녀를 번식하였다. 해와는 이와 같이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열매도 맺을 수 있고, 또한 악의 열매도 맺을 수 있었던 성장기간을 통하여서 완성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랑을 선악과라고 하였던 것이며, 그 사람을 말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피와 살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사랑으로 선과를 따먹고, 선의 피와 살을 받아 선의 혈통을 번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사탄을 중심한 악의 사랑으로 악과를 따먹고, 악의 피와 살을 받아 악의 혈통을 번식하여 죄악의 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탄(천사)을 중심한 사랑에 의하여 서로 혈연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저주하시어 배로 다니고 또 종신토록 흙을 먹으리라고 하셨다. 다리로 다니지 못하고 배로 다닌다는 것은, 천사가 창조본연의 활동을 하지 못하하고 비참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흙을 먹는다는 것은 것은 하늘로부터 쫓겨남으로 말미암아(이사야 14장 12절, 요한계시록 12장 9절),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의 요소를 받지 못하고, 죄악의 세계에서 악의 요소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여, 죄의 뿌리는 인간 시조가 과실을 따먹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뱀으로 표시된 천사와 불륜한 혈연관계를 맺은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의 혈통을 번식하지 못하고 사탄의 악의 혈통을 번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서 인간의 죄의 뿌리가 음란에 있었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죄의 뿌리가 혈연적인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원죄는 자자손손에게 유전되어 왔다. 그리고 죄를 벗으려고 하는 종교마다 간음을 가장 큰 죄로 규정하여 왔으며, 이것을 막기 위하여 금욕생활을 강조하여 온 것이니, 이것도 죄의 뿌리가 음란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기 위한 속죄의 조건으로서 할례를 행하였던 것은, 죄의 뿌리가 음란에 의하여 악의 피를 받아들인 데 있었기 때문에, 타락인간의 몸으로부터 그 악의 피를 뽑는다는 조건을 세워서 성별하기 위함이었다.

수많은 영웅 열사와 국가들이 멸망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음란에 있었던 것은, 음란이란 죄의 뿌리가 항상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발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로써 인륜도덕을 세우고, 제반 교육을 철저히 하며, 범죄를 빚어내는 경제사회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다른 모든 죄악들은 이 사회로부터 불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되면서 날로 안일한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증대되어가고 있는 음란이란 범죄만은 그 누구도 막을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에서 이 범죄를 발본색원 할 수 없는 한, 결코 이상세계는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재림하시는 메시아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죄의 뿌리가 어디까지나 음란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제1절에서 뱀은 곧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처럼 인간의 타락된 동기가 천사에게 있었으므로, 그 타락의 동기와 경로를 알려면 먼저 천사에 관한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따라서 천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세계를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도 먼저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6절 에 씌어 있는 천지창조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스스로를 복수로 부르셨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의 많은 신학자들의 해석대로 삼위신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인간보다도 먼저 창조되어 있었던 천사들을 놓고 그들을 포함시킨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피조세계의 창조와 그의 경륜을 위하여 먼저 천사를 사환으로 창조하셨다(히브리서 1장 14절).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중대한 축복의 말씀을 전하였고(창세기 18장 10절), 그리스도의 잉태에 관한 소식을 전하였으며(마태복음 1장 20절, 누가복음 1장 31절), 옥중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베드로를 풀어 성 밖으로 인도하였던 것이다(사도행전 12장 7절 - 10절). 이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천사가 활동한 예는 성서에서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는 천사가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하였고, 또 히브리서 1장 14절에는 천사를 '부리는 영'이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그리고 천사는 하나님에게 송영을 드리는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증거를 성서 가운데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요한계시록 5장 11절, 요한계시록 7장 11절).

다음에는 천사와 인간과의 창조 원리적인 관계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자녀로 창조하시고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권을 부여하셨기 때문에(창세기 1장 28절), 인간은 천사도 주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 3절을 보면, 인간에게는 천사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영계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천사들이 낙원에 있는 성도들을 옹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도 역시 천사의 인간에 대한 시종적인 관계를 말해 주는 하나의 좋은 예라 하겠다.

하나님은 영적인 부분과 육적인 부분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타락에 있어서도 영육 양면의 타락이 성립된 것이다. 천사와 해와와의 혈연관계에 의한 타락이 영적 타락이고, 해와와 아담과의 혈연관계에 의한 타락이 육적 타락인 것이다.

그러면 천사와 인간과의 사이에 어떻게 성적인 관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 ? 인간과 영물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모든 감성은 어떠한 점에서나 실체적인 존재 사이에서 느끼는 그 감성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과 천사와의 성적 타락은 사실상 가능한 것이다.

한편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하여서도 위에서 말한 내용을 더욱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사회에 있어서 지상인간들이 영인들과 결혼생활을 하는 예가 왕왕 있다는 것, 그리고 천사가 야곱과 씨름을 하여서 그의 완도 뼈를 부러뜨렸다는 예(창세기 32장 25절)와 함께, 천사가 아브라함의 가정에 나타나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창세기 18장 8절)과, 또 롯의 집에 찾아온 두 천사가 롯이 대접한 무교병을 먹었을 뿐 아니라, 그 성 백성들이 그 천사를 보고 색정을 일으키어 롯의 집을 둘러싸고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대하리라"(창세기 19장 5절)고 외친 사실 등은 모두 이에 속한 예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세계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26절), 누시엘(계명성이란 뜻, 사도행전 14장 12절)을 천사장의 위에 세우셨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복의 기관이 되었던 것같이 누시엘은 천사세계의 사랑의 기관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자녀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종으로 창조된 누시엘보다도 그들을 훨씬 더 사랑하시었다.

사실상 누시엘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이나 후나 조금도 다름없는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자기보다도 아담과 해와를 더 사랑하시는 것을 볼 때에 그는 사랑에 대한 일종의 감소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침부터 노동을 한 일꾼이 자기대로의 상당한 노임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와서 적게 일한 일꾼도 자기와 똑같은 노임을 받는 것을 볼 때에 자기가 받는 노임에 대한 감소감을 느꼈다고 하는 성서의 예화(마태복음 20장 1 - 15절 )와 같은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랑의 감소감을 느끼게 된 누시엘은, 자기가 천사세계에서 가졌던 사랑의 위치와 동일한 것을 인간세계에 대하여서도 그대로 가져 보고자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곧 영적 타락의 동기였다.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을 받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사랑은 피조물의 생명의 근본이요, 행복과 이상의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많이 받는 존재일수록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으로 창조된 천사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해와를 대할 때, 그가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해와가 누시엘의 유혹에 끌려오는 빛을 보였을 때, 그는 해와로부터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자극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누시엘은 죽음을 무릅쓰고 더욱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사랑에 대한 과분한 욕망으로 인하여 자기의 위치를 떠난 누시엘과,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지려고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란 해와가(창세기 3장 5 - 6절) 서로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었으므로, 그로 인한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그들로 하여금 불륜한 영적인 정조관계를 맺게 하였던 것이다.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면 서로 그 대상으로부터 그의 요소를 받도록 창조된 원리에 의하여(창세기 3장 7절), 해와는 누시엘과 사랑으로써 일체를 이루었을 때 누시엘의 요소를 받았던 것이다. 즉 첫째로 그는 누시엘로부터 창조목적에 대한 배치로 말미암아 양심은 가책에서 오는 공포심을 받았고, 둘째로는 자기가 본래 대해야 할 창조본연의 부부로서의 상대자는 천사가 아니고 아담이었다는 사실을 감득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그에게서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해와는 아직도 미완성기에 있었다.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완성기에 처해 있었던 천사 장에 비하여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는 천사 장으로부터 그 지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당시 해와는 아직도 미완성기에 있었다.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완성기에 처해 있었던 천사장에 비하여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그는 천사장으로부터 그 지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아담과 해와는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영원한 부부를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해와가 미완성기에서 천사장과 불륜한 혈연관계를 맺은 후, 다시 뒤미처 아담과 부부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아담도 역시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다. 이렇게 때 아닌 때에 사탄을 중심 삼고 아담과 해와 사이에 이루어진 부부관계는 그대로 육적 타락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와는 천사 장과의 영적인 타락에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온 공포심과 자기의 원리적인 상대가 천사 장이 아니고 아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새로운 지혜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해와는 그제서나마 자기의 원리적 상대인 아담과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 앞에 다시 서고, 또 타락으로 인하여 오게 된 공포심을 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담을 유인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육적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에 불륜한 정조관계에 의하여 천사 장과 일체를 이루었던 해와는 아담에 대하여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담은 해와의 눈에 매우 아름답게 보여졌다. 그리하여 해와에게 있어 아담은, 그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와는 자기를 유혹하였던 천사 장과 똑같은 입장에서 아담을 유혹하였다. 아담이 누시엘과 같은 입장에 서 있었던 해와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일어났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아담으로 하여금 창조본연의 위치를 떠나게 하여, 마침내 그들은 육적인 불륜한 정조관계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아담은 해와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해와가 누시엘로부터 받았던 모든 요소를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그리고 이 요소는 다시 그 후손에게로 연면히 유전되어 내려온 것이다. 해와는 타락되었다 할지라도 만일 아담이 타락된 해와를 상대하지 않고 완성되었더라면, 완성한 주체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인 해와 하나에 대한 복귀섭리는 대단히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마저 타락하였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계승한 인류가 오늘날까지 번식하여 내려온 것이다.

인간은 원리로써 창조되어 원리궤도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의 힘 그 자체가 인간을 원리궤도에서 탈선케 하여 타락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레일이나 기관에 고장이 없는 한, 기차가 스스로 궤도를 탈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기차도 그가 달리는 힘보다도 더욱 강한 다른 힘이 그와 방향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탈선될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 자신을 성장케 하는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그 어떠한 힘이 그와 목적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타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힘이 곧 사랑의 힘이다. 그러므로 미완성기에 있어서의 인간은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인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원리의 힘보다도 사랑의 힘이 더 강하여서, 미완성기에 있어서의 인간이 목적을 달리한 그러한 사랑의 힘에 부딪칠 때, 그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도 있게 되었던가 ?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3대상 사랑에 의하여 3대상목적을 완성한 4위기대의 주체적인 사랑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인간 창조의 목적인 4위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사랑은 인간의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하셔야 하므로, 그 사랑이 사랑답기 위하여는, 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도 더 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약하다면, 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원리를 더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예수 님이 제자들을 진리로써 세워 가지고, 사랑으로써 구원하고자 하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따먹지 말라는 믿음을 위한 계명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강하므로, 아직 미완성기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주관을 받을 수 없는 아담과 해와가, 만일 천사장의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면, 목적을 달리하는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장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천사를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과만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였더라면,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작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계명을 지키지 않고 천사장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그와 수수작용을 하였기 때문에, 그 불륜한 사랑의 힘은 그들을 탈선케 하였던 것이다.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셨던 것은,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타락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밖에 또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으로서, 그 말씀을 믿고 스스로 완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게 하여 만물에 대한 주관성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다(전편 제1장 제5절 Ⅱ.2).

그리고 이 계명을 천사장에게 주시지 않고 인간에게 주셨던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천사까지도 주관해야 할 인간의 창조 원리적인 자격과 위신을 세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Ⅲ. 믿음을 위한 계명이 필요한 기간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조상에게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믿음을 위한 계명은 언제까지라도 필요한 것이었던가 ? 사랑을 중심하고 볼 때 하나님의 제2축복 완성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부부를 이루어, 그 자녀가 번성함으로써(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직접적인 주관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성되면 따먹는 것은 원리적인 것으로서 허용되도록 창조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부부를 이룸으로써, 그 절대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주관을 받게 되면, 이 절대적인 부부의 사랑의 힘을 끊을 자나 그것을 끊을 힘은 없으므로 그들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다. 더구나 인간보다도 저급한 천사장의 사랑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하나님을 중심한 그들 부부간의 사랑을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따먹지 말라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에 있을 때에 한해서만 필요했던 것이다.

아담과 해와가 영 육 아울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천사를 비롯한 피조세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 우리는 여기에서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자.

타락한 천사장 누시엘을 사탄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 있다. 누시엘과 인간조상이 혈연관계를 맺어 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탄을 중심한 4위기대가 이루어지면서 인간은 사탄의 자녀가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고, 또 마태복음 12장 34절과 동 23장 33절에서는 그들을 뱀 또는 독사(사탄)의 자식이라고 하셨다(마태복음 3장 7절). 한편 또 로마서 8장 23절에는 처음 익은 열매된 우리들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이루었더면, 그 때 하나님 주권의 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미완성기에 타락되어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사탄주권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장 31절에는 사탄을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였고, 또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는 사탄을 세상의 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어 사탄은 피조세계의 주관주로 창조된 인간을 주관하게 되었으므로, 그는 피조세계까지도 주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9절에는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만물이 완성된 인간의 주관을 받지 못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사탄을 물리치고 자기들을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인간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사탄은 욥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듯이(욥기 1장 9절), 항상 모든 인간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지옥으로 끌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탄도 그의 대상을 취하여서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지 않고는 사탄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탄의 대상은 영계에 있는 악영인들이다. 그리고 이 악영인들의 대상은 지상에 있는 악인들의 영인체이며, 지상에 있는 악인들의 영인체의 활동대상은 바로 그들의 육신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2장 3절에는 사탄이 가룟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하였고, 또 마태복음 16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가리켜 사탄이라고 하셨다. 한편 이러한 악영인체를 마귀의 사자라고 한 기록도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25장 41절).

지상천국을 복귀한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전 인류가 사탄과의 상대기준을 완전히 끊고, 하늘과의 상대기준을 복귀하여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사탄이 전혀 활동할 수 없게 된 세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말세에 이르러서 사탄을 무저갱에 가둔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사탄의 상대자가 없어지므로 사탄이 활동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이 사탄과의 상대기준을 끊고, 더욱 나아가서 고린도전서 6장 3절의 말씀대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하여서는, 사탄이 사탄된 죄상과 그 정체를 알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와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이를 복귀하시는 데 있어서도 강제로 하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자유의지에 의한 책임분담으로써 말씀을 찾아 세워 가지고, 사탄을 자연굴복시켜야만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에 의하여 섭리하시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연장을 거듭해 내려오게 된 것이다.

선과 악에 대한 정의는 이미 '창조원리' 중 '창조본연의 가치'에서 논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목적성으로 본 선악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아담과 해와가 그들에게 부여된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4위기대를 조성하였더면, 그들은 선의세계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목적을 반대로 한 사랑으로서 사탄을 중심하고 4위기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악의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동일한 내용의 것이, 상반된 목적을 지향하여 나타난 결과를 두고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해 온 인간의 성품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 삼고 나타나면 선이 되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이제 그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흔히 죄라고 생각하는 욕망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창조본성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목적은 기쁨에 있고, 기쁨은 욕망을 채울 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인간에게 욕망이 없다면, 동시에 기쁨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도, 살고자 하는 욕망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도,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복귀섭리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간사회의 유지와 그 발전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래의 욕망은 창조본성이기 때문에, 이 성품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 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사탄의 뜻을 목적 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악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 악한 세상도 예수님을 중심하고 그 목적의 방향만을 돌려놓으면, 이 악한 세상도 예수 님을 중심하고 그 목적의 방향만을 돌려놓으면, 선한 것으로 복귀되어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Ⅱ), 이러한 원리로 보아 자명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는 사탄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이 타락세계를,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룬 지상천국에로 그 방향성을 바꾸어 나아가는 섭리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이 섭리의 과정에 있어서 다루어지는 선의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왜냐 하면 어떤 특정한 시대를 놓고 볼 때, 그 시대의 주권자의 이념이 지향하는 목적에 순응하면 선이 되고, 그 목적에 반대하면 악이 되지만, 한번 그 시대와 주권자가 바뀌어 그 이념이 달라지게 되면, 동시에 그의 목적도 달라지고, 따라서 선과 악의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나 사상에 있어서도, 그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그 교리와 그 사상이 지향하는 목적에 순응하는 것이 선이고 그에 반대하는 것이 악이 된다. 그러나 일단 그 교리나 사상이 달라지거나 혹은 다른 종교로 개종하거나, 또는 다른 사상으로 전향하게 되면 그에 따라서 목적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악의 기준도 자연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사회에 항시 투쟁과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주요한 원인은, 이와 같이 인간이 지향하는 목적이 달라짐에 따라서 선악의 기준이 항시 달라지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의 선은 이와 같이 상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상에서 사탄의 주권을 물리치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영존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시어 그로부터 오는 이념이 세워질 때는, 그 이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도 절대적인 것이어서 선의 기준도 절대적인 것으로 세워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재림주님에 의하여 세워질 천주적인 이념인 것이다.

사실상 인류역사는 수많은 투쟁과 혁명을 거듭하면서, 본심이 지향하는 이 절대선을 찾아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타락된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투쟁과 혁명은, 이 절대적인 목적을 추구하여 절대적인 선의 세계를 이룩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신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편에 있는 선영인들과 천사들을 총칭하는 말이고, 악신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과 사탄 편에 있는 악영인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선과 악이 그러하듯이 선신의 역사와 악신의 역사도 동일한 모양으로 출발하여 그 목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선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개체의 평화감과 정의감을 증진시키며 그 육신의 건강도 좋아지게 한다. 그러나 악신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공포로 이기심을 증진케 하며 건강도 해롭게 한다. 그러므로 영적인 역사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그것을 분별하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결과를 보아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인간은 하나님도 사탄도 모두 대할 수 있는 중간위치에 있기 때문에 선신의 역사인 경우에도 악신의 역사를 겸행하는 때가 있다. 또 악신의 역사도 어느 기간을 지나면 선신의 역사를 겸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원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분별하기가 곤란하다. 오늘날에 있어 많은 교역자들이 이에 대한 무지에서 선신의 역사까지도 악신의 것으로 몰아, 하늘 '뜻'에 상반되는 처지에 서게 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현상이 점점 많아지는 오늘날에 있어서, 선신과 악신의 역사를 잘 분간하여 분립할 수 없는 한 영통인들을 지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죄라는 것은 사탄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킴으로써, 천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죄를 분류해 보면, 첫째로 원죄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조상이 저지른 영적 타락과 육적 타락에 의한 혈통적인 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원죄는 모든 죄의 뿌리가 되고 있다.

둘째로는 유전적 죄가 있다. 이것은 부모가 지은 죄가 몇대에 이른다고 한 십계명의 말씀과 같이, 혈통적인 인연으로 그 후손들이 물려받은 선조의 죄를 말한다.

셋째로는 연대적 죄가 있다. 자신이 범죄하지도 않았고 또 유전적인 죄도 아니지만, 연대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죄다. 제사장과 교법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준 죄로 말미암아, 유대인 전체가 그 책임을 지고 하나님의 벌을 받았고 전 인류도 공동적인 책임을 지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고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넷째로 자범죄가 있으니 이것은 자신이 직접 범한 죄다.

여기에서 우리가 앞에 적은 바와 같이 원죄를 죄의 뿌리라고 한다면, 유전적인 죄는 죄의 줄기, 연대적인 죄는 죄의 가지, 자범죄는 죄의 잎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죄는 그의 뿌리되는 원죄로 말미암아서 생긴다. 그러므로 원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다른 죄를 근본적으로 청산할 수 없다. 그러나 숨어 있는 이 죄의 뿌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인간의 뿌리로서 참부모로 오시는 예수님만이 이것을 알고 청산하실 수 있는 것이다.

천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해와와 혈연관계를 맺을 때에,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모든 성품을 해와가 계승하였고, 이렇게되어서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된 해와와 다시 혈연관계를 맺은 아담도 그 성품을 계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성품이 타락인간의 모든 타락성을 유발하는 근본된 성품이 되었다. 이것을 말하여 타락성근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타락성근성이 생기게 된 근본동기는 천사장이 아담에 대하여 질투심을 갖게 된 데 있었다. 그러면 선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된 천사 장에게서, 어떻게 되어 사랑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인가 ?

원래 천사 장에게도 그의 창조본성으로 욕망과 지능이 부여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천사 장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오는 그것보다 크다는 것을 비교하여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이며, 또 그에게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자동적으로 질투심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투심은 창조본성으로부터 유발되는 불가피한 부산물로서, 마치 빛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물체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완성되면 이러한 부수적인 욕망으로 인하여서는 결코 타락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욕망을 충당할 때에 느껴지는 일시적인 만족감보다도, 그 욕망을 충당함으로써 일어나는 자기 파멸에 대한 고통이 더 클 것을 실감하게 됨으로써, 그러한 범행은 감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조목적을 완성한 세계는, 마치 사람 하나의 모양과 같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는 조직사회이기 때문에, 개체의 파멸은 곧 전체적인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의 파멸을 방임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창조목적을 완성한 세계에 있어서의 창조본성으로부터 일어나는 부수적인 욕망은, 인간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요소는 될지언정 결코 타락의 요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타락성본성을 대별하면 넷으로 가를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천사장이 타락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담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그를 도리어 시기하여 해와의 사랑을 유린한 데 있다. 군왕이 사랑하는 신하를 그의 동료가 그 군왕과 같은 입장에서 같이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는 성품은, 바로 이런 타락성근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로 자기의 위치를 떠나는 것이다. 누시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하여, 천사세계에서 가졌던 것과 동일한 사랑의 위치를,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가지려 하였던 불의한 욕망으로 인하여 자기의 위치를 떠나 타락하게 되었다. 불의한 감정으로 자기의 분수와 위치를 떠나 행동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본성의 발로인 것이다.

셋째는 주관성을 전도하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을 받아야 할 천사가 거꾸로 해와를 주관하였고,또 아담의 주관을 받앙야 할 해와가 거꾸로 아담을 주관하게 된 데서 타락의 결과가 생겼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위치를 떠나서 주관성을 전도하는 데서부터 인간사회의 질서는 문란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이러한 타락성근성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넷째는 범죄행위를 번식하는 것이다. 만일 해와가 타락한 뒤에 자기의 범죄를 아담에게 번식시키지 않았더면 아담은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해와만의 복귀는 쉬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해와는 이와 반대로 자기의 죄를 아담에게도 번식시켜 그를 타락케 하였다. 악인들이 동료를 번식시키려는 성품은 이와 같은 타락성근성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원리적인 성격을 논할 때, 첫째로 우리는 원리를 벗어난 자유는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유라고 하는 것은 자유의지와 그에 따르는 자유행동을 일괄하여 표현한 말이다. 전자와 후자는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같아서, 이것이 합하여서만 완전한 자유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가 없는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자유행동이 따르지 않는 자유의지도 완전한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행동은 자유의지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자유의지는 곧 마음의 발로 인 것이다. 그런데 창조본연의 인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원리를 벗어나서 그 마음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원리를 벗어난 자유의지나 그로 인한 자유행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본연의 인간에 있어서는, 원리를 벗어난 자유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로 책임 없는 자유는 없다. 원리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은 그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그의 책임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된다(전편 제1장 제5절 Ⅱ.2). 따라서 창조목적을 추구하여 나아가는 인간은 항상 자유의지로써 자기의 책임을 행하려 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세째로 실적 없는 자유는 없다. 인간이 자유로써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려는 목적은, 창조목적을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실적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항상 실적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므로, 실적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위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자유는 원리를 벗어나서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자유는 스스로의 창조 원리적인 책임을 지게 되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실적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행동은 선의 결과만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본심의 자유라고 한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권고를 받은 이상,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오직 본심의 자유에 의하여 그 명령을 지켜야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해와가 원리를 이탈하려 하였을 때,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그의 본심의 자유는, 그에게 불안과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여 원리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 타락된 뒤에 있어서도, 이 본심의 자유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도록 작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작용을 하는 본심의 자유로 인하여 타락될 수는 없다. 인간의 타락은 어디까지나 그의 본심의 자유가 지향하는 힘보다도 더 강한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자유가 구속되었던 데 기인한다.

결국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에게도 이 자유를 추구하는 본성만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유를 복귀하는 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 흐를수록 인간이 자기의 생명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어 가는 것은, 인간이 사탄으로인하여 잃어버렸던 이 자유를 복귀해 나아가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유를 찾는 목적은,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행동으로 원리적인 책임과 실적을 세워서, 창조목적을 완성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천사는 인간을 받들어 모시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이 천사를 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유에 속한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천사에게 유혹을 당하던 때의 해와는, 아직도 지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미완성기에 있었다. 따라서 해와가 천사의 유혹에 의하여, 지적으로 미혹되고 심정적으로 혼돈 되어 유인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책임과 실적을 추구하는 본심의 자유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불안을 느꼈으나, 보다 더 큰 천사와의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선을 넘고 말았다.

해와가 아무리 천사를 자유로이 대하였다 하더라도,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계명만을 믿고 천사의 유혹의 말에 상대하지 않았더면, 천사와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발동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는 결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유가 해와로 하여금 천사를 상대하게 하여 타락 선까지 끌고 나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타락선을 넘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가 아니고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천사에 대해서도 자유로써 대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해와가 누시엘을 대하게 되어, 그와 상대기준을 조성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타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타락인간도 자유로써 하나님의 상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말미암아 창조본성을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이 본성적으로 자유를 부르짖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이하여서 창조본성을 복귀하려는 본심의 자유의 지향성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지에 떨어져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서 그의 심정도 모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는 이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을 취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타락인간에 있어서는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에 의하여, 신령(내적인 지)과 진리(외적인 지)가 밝혀짐에 따라, 창조목적을 지향하는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도 복귀되어 왔고, 그에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심정도 점차로 복귀되어 그 뜻대로 살려는 의지도 높아 가는 것이다.

또 그들은 이와 같이 자유를 복귀코자 하는 의지가 고조됨에 따라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환경에 자유를 찾는 그 시대의 인간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필연적으로 사회혁명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18세기에 있어서 프랑스혁명은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이러한 혁명은 결국 창조본연의 자유가 완전히 복귀될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인간조상의 타락행위를 모르셨을 리가 없는 것이다. 한편 그들이 타락행위를 감행할 수 없도록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들의 타락행위를 아시면 서도 그것을 간섭하여 막지 않으셨던가? 이것은 아직까지의 인류역사를 통하여 풀려지지 않은 중대한 문제중의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행위를 간섭치 않으신 이유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음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시듯이 인간도 만물세계를 주관하도록 창조하였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기 위하여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을 수행하면서 성장하여 완성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성장기간을 우리는 간접주관권 혹은 원리결과주관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주관권내에 있을 때에는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직접적으로 주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완성된 뒤에야 그들을 직접 주관하시게 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직접 주관하실 수 없는 성장기간에 있어서 그들의 행위를 간섭하시게 되면 인간의 책임분담을 무시하는 것이 되므로, 따라서 인간에 창조성을 부여하시어 만물의 주관주로 세우시려는 창조원리를 스스로 무시하는 입자에 서시게 된다. 이와 같이 원리가 무시되면, 동시에 원리의 절대성과 완전무결하신 창조주이시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원리도 또한 절대적이며 완전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원리의 절대성과 완전무결성을 위하여, 미완성기에 있는 그들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2.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하신 원리적인 존재와 그 행동만을 간섭하시기 때문에, 범죄행위나 지옥과 같은 자기가 창조하시지 않은 비원리적인 존재나 행동은 간섭하실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일 어떠한 존재나 행동을 간섭하시게 되면, 간섭을 받은 그 존재나 행동은 벌써 창조의 가치가 부여되어,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된 것과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되는 거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해 볼 때, 만일 하나님이 인간시조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시게 되면 그 타락행위에도 창조의 가치가 부여되어서, 그 범죄행위는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범죄행위도 원리적인 것으로서 인정하신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원리를 세우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어디가지나 사탄 때문이므로, 그렇게 되면 사탄이 또 하나의 새로운 원리를 창조한 것이 되어 그도 역시 창조주의 입장에 서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홀로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그들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셨다(창세기 1장 28절).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물을 주관하려면, 만물과 동등한 처지에서는 그를 주관할 수 없으므로 인간은 그를 주관할 수 있는 어떠한 자격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주관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계시는 것과 같이, 인간도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창조성을 갖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성을 부여하시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하시기 위하여, 성장기간을 두시고 이 기간이 다하기까지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완성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원리과정을 통하여 완성됨으로써만,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가지고 비로소 만물을 주관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미완성기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고 간섭하시게 되면, 이것은 아직도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창조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만물을 주관할 자격이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주관케 하시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미완성한 인간과 동일한 취급을 하신다는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 그리고 또 이 인간에게 그의 창조성을 부여하심으로서 만물을 주관케 하시기 위하여 세우셨던 창조원리를 스스로 무시하시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리에 의하여 피조세계를 창조하시고 그 원칙을 따라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우시기 위하여 아직도 간접주관권내에 있었던 미완성한 인간의 타락행위를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제2장 타락론 = 6절)


(전편=7장=30절)
총 서론 - - 제1장.창조원리 - 제2장 타락론 - 제3장 인류역사종말론- 제4장 메시아의 강림과 그재림의 목적 제5장 부활론 제6장 예정론 제7장 기독론
후 편
(후편=6장=26절)
후편 서론 제1장 복귀기대섭리시대 제2장 모세와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제3장 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연수의 형성 제4장 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

제5장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제6장 재림론 (평화신경 15 대말씀 목차) 참부모정착실체말씀선포 天地人참父母定着實體말씀宣布


얼른오세요